Musikfest Stuttgart 55

Symvolum Nicenum

(니케아 신경)

2012.9.13 PM 8:00

Stadtkirche St Diony's, Esslingen am Neckar


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

Masse h-Moll BWV 232


Julia Sophie Wagner (Soprano I)

Sophie Harmsen (Soprano II, Alto)

Lathar Odinius (Tenor)

Tobias Berdnet (Bass)

Gachinger Kantorei, Bach-Collegium Stuttgart

Helmuth Rilling (conductor)



스틸레 안티코 공연이 끝나고 호텔로 돌아와서 곯아떨어진 다음 날, 하이델베르크를 다녀왔다. 흐렸다 비가왔다 해가났다 하는 변덕스러운 날씨에 하루 종일 하이델베르크를 둘러보다보니 날씨가 너무 추워서 체력 소모가 심했다. 스틸레 안티코 공연날을 기점으로 유럽 전역에 비가 오더니 그날 이후로 기온이 뚝 떨어졌다. 최고기온이 13~14도, 최저기온이 6~7도 수준으로 떨어졌는데, 어쩌자고 가지고 온 옷이 죄다 여름옷. 맙소사. 이럴 줄은 몰랐는데. 추워봤자, 라고 생각하고 만만히 보다가 완전히 뒤통수를 제대로 맞았다. 유럽은 비 오면 을씨년스럽고 춥다더니 진짜구나, 라는 걸 실감했다. 하이델베르크에서 비와 추위에 덜덜 떨며 있는대로 고생하고 체력소모를 해 버린 우리는 그 다음날 있을 릴링의 B단조 미사를 보기 전에 슈투트가르트를 둘러보는 건 절대 느긋하고 널널하게 하자고 마음먹었다. 어차피 저녁 때 공연이 있으니까 시간도 욕심을 내 봤자, 볼 수 있는 시간도 한정되어 있었고, 사실 슈투트가르트 자체도 작은 도시여서 하루 내지는 반일 정도만 둘러봐도 충분한 곳이었다. 어차피 일찍부터 다닌다고 해도 뭔가 들어가서 관람을 하거나 구경을 하거나 쇼핑을 할 수 있는 곳들은 모두 9시나 10시가 넘어서야 문을 여니, 서두를 이유도 없었다.

오전에 슈투트가르트 시립도서관을 보고, 오후에 간단하게 시내구경과 쇼핑을 마친 후, 벤츠박물관에 들러 마감시간까지 구경을 하고 공연장으로 바로 갈 심산으로 길을 나섰다. 어차피 벤츠박물관이 있는 네카파크 Neckarpark역은 릴링의 B단조 미사 공연장이 있는 에슬링겐 Esslingen am Neckar 으로 가는 중에 내리면 되는 S-bahn 노선의 중간지점쯤에 있는 곳이기도 했다.

언제 비가왔냐는 듯, 쌀쌀하지만 파르라니 눈부신 가을 하늘을 만끽하며 간지가 좔좔 흐르는 벤츠박물관을 실컷 구경하고 저녁을 먹으러 공연장이 있는 에슬링겐으로 향했다. 벤츠박물관이 있는 곳 주변은 죄다 회사와 공업단지만 즐비할 뿐, 도대체가 뭔가 먹고 마실 곳이 전혀 없었다. 에슬링겐은 슈투트가르트로부터 남동쪽으로 7~8km쯤 떨어진 작은 도시이다. 나름대로 하이델베르크까지 흘러가는 네카강변에 있는 도시이고, 아마 독일 다른 지역에 비슷한 이름을 가진 도시가 있어서 "네카강의 에슬링겐" 이라고 따로 부르는 모양이었다. 아무리 시골이라 해도 옆 근처에 먹을 거리는 팔지 않겠냐, 벤츠박물관 주변의 휑뎅그레함보다는 낫지 않겠냐, 싶어 그쪽으로 갔는데, 운이 좋게 예상이 맞아들어갔다. 역 근처에 조촐하나마 쇼핑센터도 있고, 음식점이 늘어서 있는 거리도 있었다. 점심을 배불리 먹어서 간단하게 기로스 Gyros (케밥과 비슷한 그리스 음식. 밀전병에 각종 음식을 싸서 먹는 것) 며 카레에 적신 고기 등을 챙겨 먹고 공연장으로 향했다. 스틸레 안티코 공연과 마찬가지로, 릴링이 공연하는 성당인 성 디오니스 성당도 기차역에서 10분정도 걸어가야 되는 곳에 있었다. 스틸레 안티코 공연처럼 밤 늦은 시각에 시작하는 공연이 아니어서, 저녁을 챙겨먹고 나왔는데도 아직 밖은 해가 지지 않아 훤했다. 


저녁식사를 했던 에슬링겐의 중심가, 쇼핑몰이 있는 곳


밥을 먹은 곳에서 공연장 가는 방향을 바라보면서 가니 왠지 고풍스러운 건물이 나타나고 독특한 조각이 함께 보였다. 이 걸 보니 맞게 가는 듯 싶었다. 가까이 가보니 이런 조형물이었다. :)



꽤 재치있는 건물이었다. 오래된 중세 건물에 저런 현대적인 조각상을 설치하다니, 센스있구나... 라고 생각하며 길을 찾기 위해 두리번거렸더니, 바로 저쪽에 듬직한 성당이 하나 보이는 것 아닌가. 아. 우리 공연장이다! 



구글맵을 보니 무슨 작은 강이나 하천을 건너가야 한다고 나와있어서 무슨 큰 다리를 건너는 줄 알았는데, 위 사진에 나온 하얀 난간이 바로 다리다. 그리고 하천이나 강이 아니라 작은 운하였다. 귀엽기도 하지. 그리고 성당을 배경으로 한 풍경에 완전히 넋이 나갔다. 중세시대의 건물과, 운하와, 예쁜 다리 난간과, 난간 위에 장식된 꽃과, 운하 위에서 헤엄치는 백조 한 마리가 그야말로 그림같은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헐...



이 사진은 현재 제 카톡 프로필입니다 ㅠㅠ

 




왜 아무도 여기가 이렇게 예쁜 데라고 말 안해준거야!! 

세상에!!! 


공연 시간이 슬슬 임박하는데도 너무 예뻐서 사진 찍기 바빴다는 게 개그. 멀리서 보기에 별로 안 커보였던 성당은 가까이 갈수록 압도적으로 커지더니, 가까이 가니 그 위용이 성큼 다가왔다. 쾰른이나 노트르담같은 고딕 성당이 주는 화려함이나 위압감은 없지만, 소박하면서도 깔끔하고, 나름대로 장중한 무게감이 있는 건물이었다.



시스템 오류가 자꾸 나서 예매를 못 하고 있다가 겨우 풀려서 예매를 했지만 좀 늦게 예매를 했던 탓에 가장 좋은 자리는 구하지 못하고 그 다음 좋은 자리 (우리나라로 치면 S석 정도) 를 얻을 수 있었지만 좌석 배정을 할 수 없어서, 과연 어떤 자리일지 걱정을 많이 했는데, 의외로 괜찮은 자리었다. 중간에서 약간 뒷자리 정도 줄의 가운데 쪽이었던 거다. 운이 좋았다. 



한국에서 산 베렌라이터 판 B단조 미사 풀스코어 악보책을 가져갔었다. 예습도 제대로 못 한 상황이었는데 이 악보가 도움이 많이 되었다. 물론 당연히 프로그램도 샀다. 함께 공연을 보러온 동료 선생님은 악보 두께를 보고, 예상 공연시간을 듣고는 기함을 토하셨다. 죄스럽지만 어찌하랴... 안 그래도 걱정이 많이 되었다. 저녁 8시에 시작하는 공연, 바흐의 B단조 미사 자체가 인터미션을 뺀다 하더라도 최소한 2시간은 너끈하게 잡아먹는 긴 곡이라 10시는 확실히 넘어서 끝날 것 같은데, 문제는 평일인데도 이 에슬링겐에서 슈투트가르트까지 가는 기차가 무려 30분에 한 대씩 다니는 거였다. 10시 20분 차가 있었고 10시 50분 차가 있었고 그 이후는 11시 20분 차가 있는 거였다. 맙소사... 아이고 두야... 배차 시간표를 보고서야 나는 이 곳이 얼마나 "깡촌" 인지 실감했다. 나름대로 대중교통이 잘 되어 있다는 독일인데도 이러니. 어쨌든, 릴링의 연주 스타일이 고전적이고 전통적인 해석이니 큰 기대는 안 하지만 그래도 관객들을 생각해서 실황이니 좀 달려주시기를 기도하면서 연주 시작을 기다렸다. 이번에는 관객석 한가운데에 앉은 셈이라서 주변에 어떤 분들이 앉았는지 찬찬히 뜯어볼 기회가 있었다. 대부분의 관객들은 백발이 성성한 노인들이었고, 젊어봐야 중장년층이고, 우리 같은 젊은이들은 정말 손에 꼽을 정도였다. 아예 학생들이거나, 아예 노인네가 아니면 아기가 있을만한 젊은 사람들은 정말 거의 없었다. 유럽의 클래식 향유 인구가 우리나라보다 연령대가 훨씬 높아서 시니컬하고 반응이 뜨뜻미지근하다더니 진짜인가 보구나, 라는 걸 실감했다.






공연 시작하기 전에 오케스트라 배치 보러 쪼르르 가서 몇 장 찍어보았다. 파트보가 베렌라이터다 +_+ 알아보고 기뻐했음은 물론이다. 악기가 원전은 아니더라도, 악보는 원전을 쓰네. 오메. 독일인답게 칼같이 시간 맞춰서 공연 시작. 내년이면 여든 살 생일을 앞둔 노구의 릴링이 나타나자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졌다. 시작하기 전에, 독일어로 뭐라 뭐라 인사말인지 연설인지를 하고 시작하더군요. 이 때를 놓칠세라 잽싸게 사진. :)



공연은 그야말로 최고. 같은 B단조 미사를 헤레베헤가 내한공연 했을 때 LG 아트센터에서 들은 이래로, 그만한 B단조 미사는 다시는 못 볼거라고 생각했다. 성당에서 보는 미사곡도 또 처음이었다. 명동 성당에 스즈키와 바흐 콜레기움 재팬이 내한했을 때는 칸타타를 연주했었다. 경동 교회에서 북스테후데의 멤브라 예수 노스트리를 본 적이 있지만 그게 미사곡은 아니었다. 성당에서 연주되는 바흐의 미사곡이라니. 정말이지 이곳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경험이 아니었을까. 저 너머 제단의 금빛으로 빛나는 십자가상 아래에서 둘러서서, 둘러앉아서, 지휘하는 노장의 손길을 따라 울려퍼지는 미사곡은 그야말로 명불허전. 최고였다. 자기네 나라 작곡가의 곡을 가장 잘 하는 건 자기네 나라 사람이라더니. 오랜 세월동안 바흐를 연구해온 그 지역 바흐연구소의 해석에 토를 달 게 뭐가 있으랴. 자체적으로 방송국 (SWR2, 남서독일방송국 채널 2) 에 정기적으로 공연을 내보내고, 지역 안에 후원해줄만한 음반사(이게 바로 카루스 Carus)까지 따로 있는 곳이니, 말 다했다. 어차피 기대하지 않고 갔든 기대를 하고 갔든 만족했을 공연이었다. 시대악기를 전혀 쓰지 않은 고지식하기 이를 데 없는 공연이었지만, 성당이라는 공간을 고려했을 때 나쁘지 않은 선택지였다. 음향 역시 우려했던 것보다는 괜찮았다. 독창진의 음향이 좀 퍼지는 경향이 있어서 아쉬웠고, 독주 오블리가토의 소리가 좀 흩어지는 경향이 있어 아쉬웠지만, 그것만 빼면 나무랄 데 없는 연주였다. 특히나 플룻과 오보에 오블리가토와 함께 하는 소프라노, 알토 독창은 넋을 놓고 들었다. 글로리아며 상투스의 팀파니 소리는 성당 바닥을 타고 온 몸을 울리며 다가오는데, 이게 이런 곡이었나 싶었다. 공연장에서 봤던 느낌과는 다른 느낌. 음악을 듣다 가만히 천장을 올려다보면 까마득히 높은 저 곳에서 음표가 날아다니는 게 느껴지는 그런 분위기. 음악이 연주되는 그 순간만큼은 이 공간이 현실이 아닌 것 같은 착각이 느껴지는 분위기. 크레도가 시작하기 전에 인터미션이 있었는데, 없어도 괜찮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사실은 기차 시간 때문에 초조하기도 했고) 곡의 흐름이 쫀쫀하게 잘 이어져서 좋았다. 악장간 박수도 없었고, 인터미션도 다들 잘 모르고 있었는지 한참만에 박수가 터져나왔다. 어두워지니 날씨가 더욱 쌀쌀해 지는데 난방을 안 하는 성당 안의 공기는 다소 싸늘했지만, 난방을 했으면 반수 이상이 노인네들이니, 저녁잠 많은 어르신들이 죄다 코를 골며 잤을지도 모른다는 동료분의 말에 피식. 걱정했던 대로 크레도는 좀 늘어뜨린다 싶더니 나도 피로가 쌓인 여행의 마지막날이라 그런지 살짝 졸았을 지경이었지만, 일부러 그런 듯, 평소보다 더 큰 상투스의 우렁찬 팀파니로 일부러 깨워주는 센스. 상투스를 지나고 나서는 릴링도 힘에 부쳤는지 속도를 좀 내는 듯 했다. 어렷품하게 느끼기로 합창단이 좀 버거워 하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현지공연에서 특히나 내한공연과 크게 차이가 났던 건, 처음부터 끝까지 편차가 거의 보이지 않았다는 거였다. 한 곡 한 곡마다 기복이 없을 수는 없었겠지만, 정말 놀라울 정도로 처음부터 끝까지 고른 호흡으로 일관성이 있게 페이스를 유지하는 게 보였다. 아무래도 컨디션이라는 게 중요하긴 하다보니 더 그렇게 느껴졌던 것 같다. 릴링만큼이나 백발이 성성한데도 웃음을 잃지 않던 제 2바이올린 수석이 내 자리에서 참 잘 보였는데 아주 여유만만하고 노련하게 연주하는 게, 자꾸만 눈길이 갔다. 그리고 마지막, 도나 노비스 파쳄. 내가 아는 도나 노비스 파쳄이 지금 연주되는 거 맞지? 바닥으로 울려오는 팀파니와 합창 소리에 몸을 맡긴 채 가만가만 라틴어 가사를 따라부르는데 눈물이 나서 창피할까봐 참느라 혼났다. 정말 걱정도 많이 했고 프라하에서 무리해서 여기까지 온 게 아닐까, 여기 못 찾으면 어쩌나, 힘들게 찾았는데 공연이 기대 이하이면 어쩌나, 걱정을 많이 했는데, 마지막곡이 끝나는 순간 그 모든 게 아주 깨끗하고 가볍게 휙, 날아가버렸다. 주여, 그 날 그 곳에서 음악을 함께 하던 모든 이에게 평화를. 아마도 내가 이 공연을 보고 한국에 올 때 까지 뭐 크게 잃어버린 것도 없고, 사고도 안 나고 그야말로 평화롭고 무사히 다녀온 게 꼭 내가 잘나서 그러랴. 그런 거다. 세상이라는 게 꼭 사람의 힘만으로는 안 되는 일도 있는 법이라, 오만하게 내가 잘났다고만 생각하면 안 되는 것을. 감사합니다. 


공연이 끝나고 커튼콜도 제대로 못 한 채 기차시간에 맞춘다고 뛰쳐나왔지만, 그래도 기차를 놓쳐서 승강장에서 20여분을 기다려야 했다. 날은 어둡고 온도는 계속 떨어지고 옷은 얇고 덜덜덜 떨면서 기다리는데, 자판기에서 반 유로짜리 레몬 홍차와 코코아를 뽑아 마시며 벤치에 앉아있는데, 공연을 보고 나오는 사람들이 꾸역 꾸역 승강장을 채워갔다. 같은 팜플랫으 든 걸 알아보고 서로 눈이 마주치면 씨익 웃었다. 말이 통하지 않아서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해도, 다 알 수 있었다. "너도?" "응, 너도?" ... 제법 많은 사람들이 함께 기차를 타고 무려 대여섯 정거장 떨어진 슈투트가르트 중앙역까지 이동했다. 밤 11시가 다 된 시각이라, 몹시도 피곤했고, 기차 안에서는 술에 취한 젊은이들이 고성방가를 해 댔지만, 공연을 함께 한 나이드신 분들이 옆에 같이 앉아 계시면서 계속 눈총을 보내주시니, 왠지 안심이 되었다. 늦은 시각이었지만, 훈훈한 밤이었다. 이날 밤은 유럽 대륙을 밟은 뒤로 정말 꿈도 안 꾸고 새벽에 춥다고 깨지도 않고 아주 푹 잤다. 그렇게 여행 마지막날이 끝났다. 그렇게 또 한 번 잊을 수 없는 추억이 생겼다.





릴링옹의 커튼 콜. :)




프로그램북 모아놓은 것. 귀국해서 찍었습니다 :)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Posted by 리히테르

요즘 운동하면서 음반 하나씩 듣기 실천 중. 헬스클럽 같은데 가는 건 아니고 (돈 없습니다. 시간도 내가 주로 운동하는 시간엔 여는 데가 없더라는) 그냥 밖에서 1시간 반 남짓 5km가 좀 못 되는 거리를 열심히 걷는 것 뿐. 연일 열대야라고 뉴스에서 떠들긴 하지만 그래도 밤엔 제법 시원한 바람이 분다. 아니 그것도 그렇지만 38도 40도 찍는폭염 겪고 오니까 여기 별로 안 더워 ㅋㅋㅋㅋㅋㅋ 난 백퍼센트 더위 타는 사람이라서 여름엔 나무늘보처럼 엿가락처럼 늘어져서 지냈는데, 더위를 미리 겪은 탓인지 아직까진 좀 쌩쌩하게 잘 살고 있음. 습도라는 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기온만 놓고 비교해 보면 진짜 별로 안 더울 것 같은데 땀이 삐질삐질 나는 게 신기할 지경이다. 아니 일단은 빨래가 뽀송뽀송하게 안 말라서 문제다. 이런 습도 정말 짜증나. 왕 짜증.


각설하고, 운동을 하고 있는데, 음악을 들으면서 운동을 하면 효과도 좋다는 이야기도 있고, 기분도 전환 되고, 사놓고 안 들은 음반들을 이 기회에 들어치우는 -_-a 효과도 있고 해서 귀찮아도 열심히 리핑해서 넣어놓고 "매일 매일 운동 = 매일 매일 음반 하나 듣기" 개념으로 운동하고 듣는 중이다. 최근에 들은 건 David Munrow 의 음반. 제법 옛 사람인데 고음악 부흥의 시조라던가. 옛날 옛날에 La Volta 포스팅 해놓고 한동안 잊고 있다가, 요즘 갑자기 생각나서 온 방을 뒤져 먼지 구뎅이에서 음반 끄집어 냈다. 리코더 소리가 너무 듣고 싶었다. (더워서...) 먼로의 음반들이 대부분 중세-르네상스 음악을 모아놓은 컴필레이션 비슷한 음반들이라서 진짜 잡다한 게 많이 들어있는데, 주로 시대순으로 해서 중세-르네상스-초기바로크-후기바로크 이런 식이다. 아니면 헨리 8세 시대의 음악을 모아놓은 거라든지. 어차피 그 시대의 음악들은 다들 이런식으로 편집할 수 밖에 없는 곡들이기도 하다. 작곡자도 없는 무명씨의 중세음악부터, 바흐, 비발디, 헨델, 퍼셀까지.  오래간만에 들으니 시간여행하는 기분이었다. 음악의 역사를 따라 쭈욱. 데이빗 먼로가 이끄는 콘소르 일당은 이런 시간의 흐름을 어찌나 맛깔나게 잘 표현하는지. 괜히 테스타먼트로 복각되는 게 아니었어. 어쩌면 고증이 철저한 요즘 악단보다는 좀 보수적일지언정, 그들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하고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는 연주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니피캇 Magnificat 은 성모마리아가 예수를 잉태하고 나서 사촌언니이자 세례 요한의 아내 엘리사벳을 찾아가 축복을 받고 (이 축복이 바로 성모송에 해당한다) 답례로 주님을 찬양하는 송가. 실제로 성경에도 마니피캇이라고 표기가 되어 있다. 루카복음서 1장 46절에서 55절까지가 해당되는 부분이다. 이 부분이 통째로 송가인데, 음악으로 만들 때는 2행 혹은 3행씩 잘라서 가사로 쓰는 거다. 그러니까 이건 강림절, 즉 크리스마스 시즌에 연주되던 음악이라 이거다. ㅋㅋㅋㅋㅋㅋ 이런, 여름에 크리스마스 음악 올려서 죄송합니다. 워낙에 유명한 소재이고, 교회음악 중에서도 가장 대중적으로 어필하기 좋은 소재라 그런지, 중세시대부터 지속적으로 곡을 붙여 작곡된 곡 중의 하나다. 바흐는 이 송가를 총 12곡으로 된 일종의 칸타타 양식으로 작곡했다. 다소 웅장한 느낌을 주는 코랄 사이사이로 소프라노, 알토 아리아. 이렇게 말하니까 여자들의 노래일 것 같지만 중간에 베이스 아리아도 하나 있다. 게다가 그 시절엔 알토도 남자였지 말이다. 청아한 목소리와 목관 위주의 오블리가토가 아름다운 곡. 데이빗 먼로의 리코더 오블리가토가 들어간 9번째 곡이 왠지 다른 연주에 비해서 훨씬 세속적이고 귀여운 느낌이 들어서 올려본다. 이거 여자 목소리 아닙니다. 남자가 불렀다는...(...) 크흠.






J.S. Bach 

Magnificat BWV 243 in Eb

9. Esurientes 

James Bowman, counter tenor


The Early Music Consort of London

Dir. David Munrow


데이빗 먼로의 생몰년도는 1942-1976. 불과 서른 네 살밖에 안 되는 젊은 나이에 자살로 생을 마감하다니,[각주:1] 이 세상은 그가 연주했던 음악들 처럼 순수하지 않다는 거에 실망한 거였을까. ㅠㅠ 아니면, 저 세상에서는 태초의 원형에 가까운 음악을 공부하는 사람이 정말 필요했던걸까. 그것도 그런데, 이 The Early Music Consort of London 악단 프로필 보고 기절초풍... 바로크 바이올린이 사이먼 스탠디지 Simon Standage, 하프시코드/오르간이 크리스토퍼 호그우드 Christopher Hogwood... 으악... 요즘 고음악의 거장들, 얘네들 젊었을 때 여기서 활동했구나! 뭔가 전공의 수련을 엄청 좋은 병원에서 하고 나와서 유명한 교수로 이름 날리는 그런 사람들의 전공의 시절 그로스 사진을 보는 뭐 그런 느낌이다. (비유가 왜 이래...) 


줄리언 반스 메트로랜드와 함께 시원한 블루 레모네이드. :)



  1. 참고 자료 : http://www.davidmunrow.org/index.htm [본문으로]
Posted by 리히테르

토요일에 프로즌 예약이 잡혀있어서 조금 일찍 나왔더니 판독실에 아무도 없길래 멘델스존의 한여름밤의 꿈 서곡을 틀어놓고 반쯤 춤추고 콧노래 흥얼흥얼하면서 판정리를 하다가 9시 10분쯤에 교수님이 들이닥쳐서 얼굴이 빨개졌다. 치프가 판정리를 하고 있다는 것도 부크러워 죽겠는데 음악 틀어놓고 반쯤 춤추고 있었으니 정말로 도망가고 싶었다는 게 맞을 듯. 1년차 3년차에게 교수님 일찍 오시는 편이니까 일찍들 나오시라고 문자까지 보냈거늘 아 진짜 말 좀 들어라 이 사람들아 -_- 치프 말이 말 같지가 않냐 -_- 에혀 그래 내가 좀 만만하게 보이는 편이긴 하지. 나도 아랫년차 땐 어지간하게 개기던 편이었으니 이러나보다. 벌을 받는 게야. 그러니까 느네들이 치프 해봐라 기어오르는 아랫년차들 때문에 속 좀 썩어보라지 하며 저주 좀 해 주고. 

그건 그렇다 치고. 제일 늦게온 1년차가 하필이면 바이올린을 의국에 들고와서 나한테 면죄부를 받아버렸다. 이런. 1년차 덕에 진실로 근 5-6년만에 바이올린을 잡아봤다는 개그. 그리고 집에 오는 길에 바이올린 현이랑 튜너를 샀겠지. 파닥파닥. 낚였다. 낚였어. 역시 그만둔지 오래 안 된 1년차라 그런지 훨씬 더 잘하드만... 여튼 전공의생활을 하면서 악기를 놓지 않고 계속 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인데 좀 부럽기도 하고 대단하기도 하고. 이 기세로 4년차 때 까지 악기 놓지 말고 계속 하려무나. 여튼. 집에 와서 postop로 악기를 처음 꺼냈는데... 그러니까 마지막으로 악기를 꺼낸 게... 3년 하고도 훨씬 더 전이라는 이야기다. 어쨌든 난 이걸 다시 못 할거라고 지레 겁먹었는데 현 새로 산 걸로 바꿔달고 튜너 없이 해 보니까... 생각보다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니고 예전보다 오히려 예민하게 음정 잡아내는 것 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3년동안 징하게 듣기만 엄청나게 들어대서 그런지 음이 안 맞으면 묘하게 거슬리는 그런 거 말이다. 다만 악기가 좀 오래된 녀석인데 (이제 2012년이니 년식만 치면 정말로 100년이 넘은 악기가 되었다. 처음 샀을 때 이미 80년이 좀 넘은 녀석이었으므로...) 그동안 관리를 너무 안 해서 어디가 갈라졌는지 소리가 새는 느낌이라 언제 한 번 예당 쪽 악기점에 가져가야 될 것 같은데 과연 그 때 가 언제가 되려나. 활털도 한 번 갈아야 할 거 같고. 숱이 다 빠졌다. 그냥 켜도 딱히 크게 나쁘지 않은 것 같기도 하지만 여튼 한 번 보여주러 가야될지도 모르겠다. 스트라디바리나 과르네리같은 명기는 아니지만 나한테는 과분할 정도로 최고의 악기이긴 하니까. 개방현 튜닝하는데 요즘 하도 시대악기 피치로 들어서 그런지 머릿속에 인식된 A현 치피가 약간 상향 조절된 것 같더라. 440Hz인데 왜 나한텐 좀 낮은 것 같습니까 ㅋㅋㅋ (보통 이탈리안 피치가 448-450Hz 정도로 약간 높음) 여튼 이것 저것 그어보니 엉망 진창도 이런 엉망 진창이 따로 없다. 그거 좀 켰다고 손가락도 아프고 턱받침을 안 해 버릇 한 대로 그냥 켰더니 바이올린 받치는 어깨랑 목도 묘하게 자세가 틀어진건지 아프고. 그래도 오래간만에 해 보니 좋기만 하다. 퇴국 하기 전에 1년차랑 1043 한 번...(...헙... 퍼억! 따악!) 네. 그만 떠들겠습니다.


이런 일이 있었던 관계로 정신없는 서지컬 치프 와중에 주말에 새벽같이 일어나서 하는 포스팅이라는 게 예전에 몇 개 포스팅했던 스즈키 교본에 수록된 곡 원곡 찾아보기 시리즈 이어서 하기. 스즈키 바이올린 곡집을 분명 1권부터 8권까지 다 켰고 악보도 있고 씨디도 다 있는데 어디다 뒀는지 찾기 귀찮아서 그냥 컴퓨터에 다운받아논 걸로 악보를 보면서 연주를 해 봤다. 아이폰으로 녹음을 해 봤는데 여기다 공개적으로 올릴만한 건 못 되고 그저 아이폰의 녹음기능이 워낙에 훌륭해서 내 실력이 너무나도 고스란히 드러나서 민망할 지경이었다. 아. 올려드리는 음원은 스즈키 교본에 딸린 CD에 수록된 연주입니다. 





이게 원곡. 


Bach Orchestral Suite No.3 BWV 1068 in D major 

3. Gavottes I & II

Freiburger Barockorchster

Gotfried von der Goltz




스즈키 바이올린 교본 3권 6번째 곡인 바흐의 가보트. :)








Posted by 리히테르
7:30 PM 23rd Feb. 2012 
Concert Hall, Seoul Art Centre

J.S. Bach
St Matthew Passion BWV 244
Thomanerchor Leipzig
Gewandhausorchester Leipzig

Dir. Georg Christoph Biller, Thomaskantor
Martin Petzold, (Tenor), Evangelist
Matthias Weichert (Bass), Jesus
Ute Selbig (Soprano solo)
Stefan Kahle (Alto solo)
Christoph Genz (Tenor solo)
Gotthold Schwarz (Bass solo)



 10월에 일산 암센터로 파견을 갔을 때 였을 거다. 암센터 시스템 상 오전에는 좀 여유가 있었고 집에서 거리가 먼 탓에 통근 버스를 타고 출근하면 본격적인 업무를 시작하기 전 까지 제법 시간이 많이 남아 있었다. 아침잠을 깨우려는 핑계로 이곳 저곳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슈만과 클라라 까페에서 이 공연 단체예매를 한다는 공지를 봤다. 2006년의 헤레베헤 바흐 B단조 미사를 본 이래로, 바흐의 4대 합창곡 중 하나인 마태수난곡 실황, 그것도 바흐가 칸토르를 역임했던 라이프치히 성 토마스 교회의 합창단과,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라니. 난 사실 이게 무려 우리나라에 세 번째로 하는 마태수난곡 내한 공연인 줄은 몰랐더랬다. 2004년과 2008년에 내한을 했다고는 하지만 (게다가 비록 2008년은 드레스덴에서 온 사람들의 공연이었지만), 2004년에 난 갓 본과 1학년이었을 테고, 2008년에는 아마 의사 국가 고시 준비로 바빴겠지. 그리고, 올림픽을 하는 것 처럼 올해 2012년에 맞춰 방문을 한 셈. 무안스러울만큼 빠른 시간의 흐름 속에 난 그만큼 짬밥을 먹고 치프 레지던트가 될 준비를 하고 있고. 이번이 기회라고 생각했고, 지체하지 않고 예매를 했다. 예매 개시한 지 좀 지났던 시점이었는데, 의외로 좋은 자리가 많이 있어서, 내가 고를 수 있는 가장 좋은 자리를 골랐다. 가격은, 중요하지 않았다. 1년에 이런 공연 몇 번이나 본다고. 당연하게 R석을 골랐고, 그 결과는 B블럭 4열 10번. 그러니까 무대에서 4번째줄, 중앙에서 오른쪽블럭의 가장 왼쪽 끝의 자리, 그러니까 가장 중앙 쪽 자리였다. 
복병은 이 공연이 평일 공연이라는 것이었고, 이 공연이 있는 2월 23일에 난 분당 치프라는 거였다. 과연, 저 시간에 맞출 수 있을 것인가.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 때 가서 안 되면 못 가는 거지, 뭐. 업무 특성상 오후 늦게 일이 몰리고, 저녁 늦게 일이 끝나긴 하지만, 행운이 따를 수도 있는 거고. (사실 그래서 평일 공연은 거의 포기하고 지내는 신세이긴 하다.)

여튼 까맣게 잊어버릴 무렵, 공연 하니까 잊지 말라고 예술의 전당에서 문자도 보내주고 해서, 어떻게 어떻게 일을 앞뒤로 좀 빡빡하게 땅겨서 하고, 분당에서 6시 땡 치자마자 달려나왔다. 7시 반이라는 공연 시작 시각은 의외로 행운이었다. 신분당선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날 남부터미널로 떠밀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최악의 난관은 바로 그 전주에 제대로 걸렸던 감기였다. 감기 끝물이면 거의 예외 없이 기침을 오래 오래 달고 사는 나는, 이번 공연을 감안해서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약을 챙겨 먹으면서 감기를 다스렸지만, 그렇다고 기침이 그렇게 쉽게 없어지는 게 아니었다. 기껏 기회를 잡았는데, 기침 때문에 못 간다고 하기엔 자존심도 상했고. 결국 진해제와 항히스타민제를 평소 용량의 2배로 때려붓고, 거기에 저녁을 굶은 상태 (... 어쩔 수 없었어요) 로 공연장에 입장. 사실 공연 시작하기 전에는 엄청나게 톤이 올라가 있었지만, 1부가 끝난 다음에는 약기운에 거의 헤롱 헤롱한 상태. 약이 그래도 효과가 있어서, 기침으로 민폐를 끼치진 않았으니, 다행이었다.

마태수난곡 공연일은 재의 수요일 Ash Wednesday 다음날, 즉 사순절 시작 제 1일째 되는 날이었다. 수난곡의 공연 시기에 정확히 맞춰서 한 셈이다. 의도적이었는지, 우연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하필 그 전날엔 BBC Radio 3에서 하루종일 줄창 Allegri의 미제레레 Miserere 를 틀어주기도 했어서, 사순절의 시작을 실감하게 해 주고 있었다.

바흐의 4대 종교 합창곡, 즉 마태수난곡, 요한수난곡, B단조 미사,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 이 넷 중에서 내 편애 정도를 따지자면 다음과 같다. 저 중에 B단조 미사와 마태 수난곡은 실황을 본 셈인데, 아니, 어쩌자고 내가 안 좋아하는 것 부터 실황을 접한단 말인가. 이런 게 어딨어.

요한수난곡 >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 >> -넘사벽- >> 마태수난곡 > B단조 미사 

그러니까, 한 마디로 말해서 난 마태 수난곡을 별로 안 좋아한다는 거다. 뒤집어 말하면 요한 수난곡을 심하게 좋아한다는 거고, 가지고 있는 음반을 끄집어 내어 듣거나 하면 대개 요한수난곡을 골라잡아 듣지, 마태는 그냥 구색 맞출려고 가지고 있을 뿐, 딱히 자주 끄집어 내어 듣는 곡이 아니라는 거다. 내가 음반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을 정도로만 듣는다고나 할까. 하여간에 애정도가 워낙 저 지경이라서, 실황을 보면 애정도가 조금이라도 올라갈까 싶어서 굳이 기를 쓰고 이 공연을 보러 온 것도 사실이다. 마태 수난곡은 CD로는 대개 3장, 실연은 거의 3시간에 육박한다. 1부와 2부로 나뉘어지고, 말 그대로 마태복음서에 있는 예수의 수난 (26장의 유월절 이야기부터 27장의 시신 안치까지) 을 음악으로 표현한 거다. 요한 수난곡에 비해서 다루는 분량과 내용도 많으니, 길이도 길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입을 모아 이야기하기를, 바흐의 종교음악 중의 최고봉이며, 수난곡 중에서도 역시 최고봉이라는 수식어가 빠지지 않는다. 이런 대곡을 어쨌든 실황으로 한 번 뿐인 기회를 잘 활용해서 듣기 위해서, 1주일 전부터 구스타프 레온하르트 Gustav Leonhardt 와 라 쁘띠 방드  La Petite Bande 의 음반을 아이폰에 리핑해서 넣어두고 시간 날 때 마다 주구장창 틀어놨다. 일하면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직업을 선택한 건 이런 면에서 참으로 다행스럽다. 반복의 효과라는 건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의외로 커서, 없던 애정이 생길때 까지 반복하면, 정말 없던 애정이 생기는 법. 아리아와 코랄 중에서 좀 귓가에 오래 머무른다 싶은 것들은 별 달아서 체크해놓고 최종적으로는 헤레베헤 내한 공연 이래로 하나씩 사다 모아놨던 베렌라이터 스터디 스코어 북을 보면서 인덱스를 달아놨다. 이렇게 생쇼에 가까운 난리를 쳐 봤자, 그래도 나에겐 여전히 요한수난곡 보다 마태수난곡이 더 어려웠고, 거리가 있었다. 어쨌든, 이건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에 가까운 발악이었으니까. 그래도 역시 반복의 힘은 위대하다고, 확실히 벼락치기를 하고 가니까 흐름을 파악하는 게 훨씬 용이했음은 물론이다.
하여간에, 베렌라이터 악보를 들고 아이폰을 이어폰에 연결한 상태에서 프로그램북을 사고, 입구에서 파는 음반까지 사가지고 낑낑대며 들어가 앉았다. 이 공연 전날 대전에서 같은 공연이 있었고, 그 공연을 본 사람들의 트윗을 통해서 가사 한글 자막을 프로젝터로 띄워준다는 이야기를 듣고 감상에 방해가 되는게 아닐까 불평했었다. 수난곡인 만큼, 공연 에티켓에 대해서는 안내 방송으로도 나왔고 (박수나 환호성 자제 요청), 프로그램 북에도 적혀있었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 북이 나중에 알고보니 진짜 알짜 대박이었던 게, 가사 한글 번역이 다 되어 있었더랬다. 꽤 놀라웠다.

그리고 공연이 시작되었다.

공연 내내 나는 거의 베렌라이터 악보만 잠깐 펼쳐보았고, 프로그램북은 이 베렌라이터 악보를 받치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그 편이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아무래도 덜 났고. 중간 중간에 기억에 남는 코랄이나 아리아는 찾아보기도 했고.

1부는 전체적으로 약간 불안했다. 어제 대전 공연의 여독이 남아있었던 탓이었을 수도 있고. 독창진도 다소 좀 붕 뜬 느낌이었고, 합창단이 오히려 어린애들이라 그런지 빨리 안정된 느낌이었다. 빌러는 합창단의 소리를 자기 뜻대로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던 것 같다. 쉴새없이 허공에 휘저어대는 그의 손 끝에서, 합창단의 음이 다듬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오케스트라는 게반트하우스의 명성을 유감없이 발휘했고. 첫 코랄 서주부터 무리없이 매끄러웠다. 내 주의력을 확 끌어당겼던 사람은 다름 아닌 에반젤리스트, 즉 복음사가역의 마르틴 페촐트 Martin Petzold 였다. 도대체 저 인간은 누구야? 라는 기분으로 사람을 확 끌어당기는 목소리였다. 오페라 가수로도 많이 활동했다고 했었나. 아니, 그게 중요한게 아니고... 마태 수난곡, 아니 수난곡은 코랄이랑 아리아가 중심이 되는 거 아니었나요? 허허허. 아니 에반젤리스트가 이렇게 강렬하면 어쩔. 심지어 예수의 독백이 묻힌다고요. 허허허. 솔직히 말해서, 난 이 마태복음을 쓴 성 마태오가 현신해서 자신이 묘사한 예수의 수난을 노래부르면 저렇게 불렀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페촐트의 탄탄한 목소리로 이어지는 "스토리텔링" 에 힘입어, 1부가 진행될수록 점점 독창진도 코랄도 안정을 찾아가는 느낌이었다. 가사 번역은 기대를 전혀 안 하고 갔던 탓인지 생각 외로 훌륭했다. 카톨릭 성서를 기반으로 한 번역이었다. 바흐의 수난곡이 신교, 즉 프로테스탄트의 음악이라는 걸 감안하면 좀 아이러니컬하지만, 성서의 번역이 기존 기독교 NIV 성경의 번역보다 훨씬 매끄럽고 친근감이 드는 번역이라는 걸 생각하면, 좋은 선택이었다. 마태 수난곡처럼 긴 곡을 음반으로 들을 때는 일일이 대본을 보고 듣는 게 아니기 때문에 (음반 내지의 대본도 대부분 영어 번역으로밖에 못 본다.) 정확하게 수난곡을 구성하는 곡 하나 하나가 어떤 의미를 담는지 한눈에 파악하긴 좀 어렵다. 한글 자막을 띄워주니까 그런 점에서는 와닿는 부분이 생겨서 정말 괜찮았다. 번역의 힘이랄까. 참 고마웠던 점. 그 전날 자막 내주는 거 싫다고 까서 반작용으로 미안해서 더 그랬다.

2부는 1부가 마치 준비운동이라도 되는 것 처럼 폭발적이었다. 한마디로 포텐 터졌다고나 할까. 안정감을 기반으로 유려하게 뽑아내는 탄탄한 연주, 그리고 절제된 감정들. 그리고 페촐트의 에반젤리스트는 처음부터 끝까지 강렬했다. 실제적으로, 마태수난곡에서 가장 압도적으로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음은 에반젤리스트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노래하는 거의 유일한 배역이다. 예수님의 말씀을 제외하고 성경에 "서술된 부분", 즉 말씀을 "노래로" 읽어주는 역할. 말 그대로의 스토리텔러이다. 바소 콘티누오 반주를 배경으로 현대 오페라의 레치타티보에 해당하는 걸 거의 3시간동안 줄창 읊어줘야 하는 배역이라는 뜻이다. 당연히 체력소모가 대단하고, 그만큼 가장 역량이 있는 테너 가수를 배치하는 것이 원칙이다. 마르틴 페촐트는 마치 에반젤리스트를 위해 태어난 사람 같았다. 딕션이 좀 안으로 말려들어가는 경향 때문에 취향의 호불호가 갈렸을 수도 있지만, 이 사람의 무시무시한 발성과 리더쉽과 같은 성량은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는 부분이다. 복음사가가 낭독하는 부분의 "분위기" 를 만들고, 그 다음에 나올 코랄이나 아리아의 성격을 규정해줄 수 있다는 걸 이번 공연에서 페촐트를 통해서 깨달았다. 정말 무서운 분이다 ㄷㄷㄷ
페촐트가 워낙에 훌륭한 모습을 보여준 탓에, 다른 배역과 독창진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0.2% 아쉬운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전체적으로 성량이 조금 부족했었고, 특히 자리 배치 탓도 어느 정도 있었겠지만 소프라노와 베이스의 음량이 아쉬웠다. 알토 솔로는 정말... 하아. 마태 수난곡은 알토의 비중이 다른 음역에 비해서 꽤 많은 편이고, 음악도 어려운 곡이 계속 배치 되기 때문에, 에반젤리스트 다음으로 일종의 에이스가 맡아야 하는 배역이다. 알토 역을 맡은 칼레는 외모도 베네딕트 컴버배치랑 닮아가지고서는 (야!) 사람 혼을 빼놓을만큼 아름다운 목소리로 맡은 아리아와 서창(레치타티보)를 훌륭하게 해냈다. 특히 2부 중반 이후의 골고다 언덕 부분의 아리아는 정말 울 뻔했다. 바이올린 오블리가토와 함께 어우러지는 그 선율에 내가 약에 취한 건지 음악에 취한 건지 분간을 못 하고 빨려들어갔었다. 


마태 수난곡을 실황으로 처음 보면서 가장 뼈저리게 느낀 건, 마태수난곡이 얼마나 구조적으로 탄탄하게 짜여진 곡인가 하는 것이다. 이번에 마태 수난곡을 듣고 보고 하면서 내가 요한 수난곡을 편애할 수 밖에 없는 까닭을 깨달았다. 요한 수난곡은 아무래도 감정에 호소하는 부분이 많다. 그에 비해서 마태 수난곡은 굉장히 음악이 견고하고 빈틈이 없다. 아주 잘 짜여져 있다. 그래서 좀 어려워한 것 같다. 바흐의 수난곡이 다 그러하다고는 하지만, 아니 수난곡 뿐만 아니라 바흐의 모든 곡이 다 그러하다고는 하지만 정말 이렇게 정교할 거라고는, 그냥 음반으로 들을 땐 몰랐다. 내 개인적인 취향으로 봐도 난 소프라노와 테너보다는 알토와 베이스를 좋아하는데, 마태수난곡은 참 신기할 정도로 테너와 소프라노의 비중이 적고, 알토와 베이스의 비중이 압도적이다. 코랄과 아리아의 배치, 특히 아리아에서 독주 악기 오블리가토와 독창의 배치는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그걸 실황으로 보니 훨씬 더 확실하게 보였다고나 할까. 베드로의 부인과 예수의 마지막 부분에서, 페촐트의 에반젤리스트는 그러한 구조적인 탄탄함을 정말 확실하게 보여줄 수 있을 만큼 카리스마 있는 음악을 들려주었다. 적어도 마태수난곡 실황을 처음 보는 나에게는 그렇게 느껴졌다. 

성 토마스 합창단 꽃소년 (...) 들의 노래도, 그야말로 압권. 안 그래도 예뻐 죽겠는데 (...) 노래도 잘불러요. 이러면 반칙 아닙니ㄲ...(...) 특히 중간에 베드로, 유다 역, 베드로의 부인 장면에서 베드로에게 질문을 하는 여종 역을 하는 솔리스트들도 천상에서 들려오는 듯 고운 목소리로 깨알같이 잘 하는 거다. 그 나이에 심지어 반주도 없이 조용한 가운데 혼자 부르려면 떨리기도 할 텐데, 참으로 대견스러웠다는. 하긴, 거의 프로들이나 다름없는데, 당연한지도 모르겠지만. 전체적으로 템포가 예습하면서 들었던 레온하르트의 음반보다는 코랄이 나올 때는 좀 늘어지고, 아리아에서는 꽤 달리는 편이었는데, 아무래도 코랄은 아가들의 호흡에 맞추려는 의도도 있고, 실황에서 좀 더 극적으로 보일 수 있는 효과를 노렸던 것 같다. 아리아는 내가 생각해도 특히 코랄에 비해서는 좀 많이 빠르다 싶었는데, 솔리스트들에게 맞춘게 아닐까 싶다. 코랄과 대비해서 일종의 밀고 당기기 처럼 곡의 호흡을 조절하려는 의도일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오케스트라도 정말 삑사리 내는 거 못들었(... 사실 냈다고 해도 내 상태로는 몰랐을 거다)다. 워낙 바흐는 마태 수난곡에서 목관과 현악 오블리가토와 성악을 같이 배치하는 극악한 아리아가 계속 나오게 만들어놨는지라, 결국은 목관악기 연주자들의 능력과 독창진과의 조화가 관건이다. 모든 오케스트라가 다 그렇듯이. 현파트야, 당연히 바흐가 칸토르로 있던 교회의 오케스트라인데, 이미 세계 정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고. 그저, 완벽하다고밖에 표현할 길이 없었다. 다만, 딱 한 가지 아쉬웠던 게, 비올이 소리가 너무 작았다는 거. 참 온몸으로 혼신의 연주를 다 해주었던 비올 연주자님께는 참 미안하지만, 마이크라도 설치해줬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워낙에 현대악기로 하는 연주 가운데에서 고악기라곤 비올 하나 달랑 있으니 아무래도 묻히는 건 어쩔 수 없었을 거라 이해하기로 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흘러, 마지막 코랄이 끝났고, 지휘자가 손을 내릴 때 까지 잠깐의 침묵 뒤, 박수가 쏟아졌다. 환호성도 있었다. 난 그 때 까지 눈물 한 방울도 안 흘리고 꾸역 꾸역 참고 있다가 박수를 치면서 한꺼번에 울었다. 박수치다 눈물 닦고 젖은 손으로 또 박수 치고. 허허. 연주자들이 나 봤으면 딱 정신나간 사람처럼 보였을 게다. 뭔가, 3시간동안의 마태수난곡을 보고 들으면서 차곡 차곡 누적된 감정선이 결국은 선을 넘고 터져나온 것 처럼 훌쩍 훌쩍 울면서 박수를 계속 쳤다. 어떻게 그 사이에 정신줄 안 놓치고 잽싸게 아이폰으로 커튼콜을 찍을 기운은 있었나보다. 손바닥이 부셔져라 박수를 쳤는데, 아픈 줄을 몰랐다. 난 앞자리에 앉아서 잘 몰랐는데, 뒷자리에 꼴사나운 모습을 보인 인간 말종들이 몇몇 있었던 모양이다. 에효. 환호와 박수는, 연주자들의 수고로움에 대한 일종의 답례라고 생각해서, 굳이 수난곡인 만큼 침묵을 지켜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도 여기는 라이프치히 성당이 아니라,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이고, 명백하게 일종의 "공연" 이지, 종교의식은 아니니까. 어쨌든 연주가 좋고 감동적이면 그 내용과 별개로 찬사를 보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나로서는 아리아가 끝날 때 마다 끝없이 박수를 쳐 주고 싶을 정도였으니까. 그러니까 난 박수와 환호라는 행위가 수난곡에 대한 몰이해로 몰아가는 게 싫다는 의미다. 수난곡을 알고 이해하고 감동을 느껴도 박수와 환호로 답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물론 저 이야기를 뒤집어보면 정말 기쁘고 감동적인 곡도 무응답으로 화답하는 게 오히려 더 진한 감동의 표현일 수 있다는 이야기도 되니까. 하지만, 무개념하게 환호성을 지르는 무리들로 인해서, 전체적으로 박수와 환호가, 작은 감동의 기쁨을 우리 식대로 표현하려는 다수의 관객들의 마음이 그렇게 평가절하되고 있다는 사실에 격하게 분노했다. 제발, 개념 좀 장착하자. 듣자 하니 중고등학생들이라고. 대체, 그 혈기 왕성한 아이들을 3시간짜리 수난곡 공연에 밀어넣은 인간이 누군지 궁금할 뿐이다. 아니, 누가 밀어넣었다 해도, 초등학교도 아닌 중고등학생들이, 그렇게 개념이 없다니. 망조로다. 난 클래식을 중고등학교 때 처음 좋아하기 시작했거늘.

그렇게 공연이 끝나고 나니 밤 11시였다. 자전거 언니와 바흐 까페 사람들이랑 예술의 전당 건너편 커핀ㄱㄹㄴㄹ에 가서 그야말로 텅 비어서 이미 2부 막판 예수가 십자가를 지는 부분에서부터 온갖 소리를 다 내고 있던 내 위장을 좀 달래주고 정신도 좀 차리고, 공연 소감도 나누고, 인사도 하고 그랬다. 늘 혼자 가서 혼자 집에 오던 내 공연 관람 패턴을 처음으로 깼다. 좋은 분들, 아는 것도 많고 예리한 시각을 가진 분들도 만나뵐 수 있었다. 이것도 인연이라면 인연.
감사합니다. 모두들 반가웠어요 :) 모짜르트님과 자전거 언니께서 날 챙겨서 분당에 데려다주시지 않았으면 정말 그 시각에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해서 헤맬 뻔했는데, 특히나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페촐트의 에반젤리스트를 머릿속에서 몰아내지 않고 고스란히 잠자리에 들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커튼콜 사진. 초상권 침해될 만한 앵글이 못됩니다. 어쩌자고 저리 묘하게 죄다 등돌리고 있을 때 찍었담.

마태 수난곡 악보의 헤레베헤 싸인

프로그램 북과 베렌라이터 마태 수난곡 악보

입구에서 산 그날 공연 단체의 마태수난곡과 요한수난곡 음반. 수입된 건 알고 있었는데 놓치고 있었다가 결국 샀다.



여담 하나.
공연 시작하기 전에 화장실에 갔다가 I'm SHERlocked 후드티 입고오신 용녀님 발견. 존경합니다.

그럼... 맺으면서
마태 수난곡의 마지막 아리아를 올려봅니다.
예수의 시신이 십자가에서 내려지고 요셉이 빌라도에게 시신을 인도해 간 후, 무덤에 안치되기 전에
베이스 솔로가 부르는 아리아입니다. "내 마음아, 네 자신을 정갈하게 하라" 는 뜻입니다.
피터 쿠이가 헤레베헤 일당과 함께 부른 연주입니다.



Aria : Mache Dich, Mein Herze, Rein
Bass Solo, Peter Kooy
La Chapelle Royale
Collegium Vocale Gent
Philippe Herreweghe


아래 유투브 영상은 프로그램북의 마태 수난곡 기사를 써 주신 이영진님께서 트윗으로 알려주신 레온하르트 옹의 마태수
난곡 실황 전곡입니다. 좋은 유투브 영상 링크 알려주신 점 정말 감사드립니다 :)

 


Posted by 리히테르
이 곡 블로그에는 두 번째 올려요.
처음에 올린건 제가 불협화음 연주회에서 연주했던 겁니다.
...

그냥 들을래요 ㅎㅎㅎ 별로 말이 많이 필요하지 않네요 :)
즐겁게 감상하세요-♡


Bach Cantata, BWV 147
Choral : Jesu Bleibet meine Freude
arr. Myra Hess
Dinu Lipatti, piano








Posted by 리히테르
이거 어디서 들어본 거 같은데... 갸웃 갸웃 하다가. 아.! 그거. 이게 그거. 했던 것.


요즘 바이올린을 배우러 다니신다는 카뮤님께 이 포스팅을 바칩니다. 스즈키 수록 볼륨 넘버를 따라갈까, 바흐의 작품번호를 따라갈까 고심하다가 그냥 포스팅을 카뮤님께 바치는 것인 만큼 스즈키를 기준으로 해볼께요. 아... 이거 찾는다고 오밤중에 온 집안의 바흐와 헨델 음반을 죄다 뒤집어 끄집어 내는 사단을 내버린. -_- 근데 이거 은근히 재밌어요. 앞으로도 종종 써먹을 만한 포스팅 소재를 발견했다는. ㄲㄲ

아. 정말 너무 오래간만에 다시 들으니 침대 밑에서 먼지 뒤집어쓰고 죽어가는 바이올린을 꺼내 닦고 활에 송진바르고 튜닝하고 켜보고 싶어져요. 흙.




요건 바이올린

Suzuki Violin Vol.3 "Bourree" in G major


요건 비올라


J.S.Bach, Suite fo solo Cello,  BWV.1009 Suite No.3 in C major

5. Bourree I-II
Nobuko Imai, viola


요게 바로 원곡인 첼로

J.S.Bach, Suite fo solo Cello,  BWV.1009 Suite No.3 in C major
5. Bourree I-II
Heinrich Schiff, Cello




아마도 바이올린으로 쉽게 연주할려면 조도 바꿔야 했을 거고, 들리는 바와 같이 첼로 원곡에 있는 폴리포니, 더블스탑을 메인 선율만 남겨놓고 죄다 삭제해야 했을 겁니다. 개인적으로는 G장조로 상큼함을 살린 바이올린 곡도 좋아해요! (아마도, 배워서 그렇겠죠.) 음악반 시절에 비올라를 궁금증에 잡아보고 이걸 켜 봤는데... 한 줄 키고 포기했던 아픈 추억이. 어쨌든, 이거 첼로 곡은 무지무지 어렵다고요 ㅋㅋㅋ

여름이 다가옵니다.





Posted by 리히테르
별 게 아니고 최근 나이브 신보가 들어온다고 하길래 쭉 보면서 주문할 걸 골라내다가
요 음반을 내가 갖고 있더라 안 갖고있더라 헷갈려서 찾아보았는데. 있었다. 그것도 비닐포장이 안 뜯긴 채로 있었지... 그래서 찾아서 꺼내들었다. 그리고 ... 자켓 보고 뒤집어졌습니다... -_-


손 밑에 있는 건 바이올린 :)




이게 뭐...? 라고 묻는 분들은....


워낙에 바흐 무반주를 사면 망설이지 않고 2번째 CD의 첫 곡, 그러니까 샤콘느가 들어있는 BWV 1004, Partita 2번의 Allemande부터 틀어보는 게 버릇인지라... 이것도 그렇게 했을 뿐이고... OMG. 아니 내가 왜 이걸 여태 비닐포장도 안 뜯고 놔뒀느냐며 ㅠ_ㅠ

이 곡은... 샤콘느가 있는 곡이라는 것 뿐만이 아니더라도- 제가 처음으로 배웠던 무반주 바이올린 곡이어서- 각별합니다. 악보에 음도 별로 없고 얼핏 보기에 쉬워보여서 덤볐다고 완전히 죽을 쑤고 물러났지만서도, 워낙에 아름다운 곡이라서 정말 포기할 수 없었던... 바이올린을 배우는 사람이라면 으레 스즈키 여덟권을 다 마치고 모짜르트 협주곡을 좀 켜보다가, 베토벤 로망스 정도를 배우고 그리고 나서 다른 기교적인 곡들과 함께 바흐 무반주 바이올린에 입문하는 걸로 압니다. 보통 바흐 무반주 바이올린을 배우게 되면 Partita 3번의 Preludio (E 장조) 를 먼저 한다고들 하는데, 제 경우 그 곡은 제 가청영역을 벗어나는 음들로 시작하는지라- 포기했었죠. 사실 바흐 무반주 바이올린에 사족을 못 쓰고 좋아하는 건, 이 곡이 걸쳐있는 음역이 제 가청영역과 가장 잘 맞아서였습니다. 지금은 별 상관 없지만, 처음에 접했을 때 재미 있든 없든 어렵든 쉽든 제가 들을 수 있는 영역에 있는 몇 안 되는 바이올린 곡이었기에 꾸역 꾸역 들어가면서 정 붙인 것도 없지 않아 있었습니다.

어쨌든 샤콘느라는 어마어마한 음악을 접한 후, (샤콘느는 진짜....) 악보를 사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고, 그 악보 귀퉁이가 해지도록 보고 또 보고 했습니다. 연주할 수 없었으니, 보고 듣는거라도 열심히 하겠다는 심정이었어요. 아마 그 때 바이올린 진짜 열심히 했는데, 한 곡이라도 켜보고 그만둬야지, 라는 오기 아닌 오기도 있었죠. 그래서 이 곡 배울 때 진짜 기뻤고, 열심히 배웠습니다. 지금도- 켜라고 하면 그나마 다시 켤 수 있는 게 이 곡 정도인 것 같네요.

Allemande는 독일 춤곡입니다. 느렸으면 느렸지, 빠른 춤곡은 아닌데, 워낙에 악보에 16분음표들이 난무하다 보니 연주자들마다 차이는 있지만, 상당히 빠른 느낌으로 연주되는 게 대부분입니다. 특히, 양의 창자를 이용한 Gut현을 쓰는 원전 연주가 등장하면서, 전체적으로 피치와 속도 모두 올라가는 경향이 있어서 이 Allemande의 경우엔 상당히 빠른 곡으로 인식되기 쉽습니다. 워낙에 배우면서 속도를 내면 맨날 혼났던 처지인지라, 빠른 곡은 아무래도 꺼려지게 되긴 했어요. 지금은 빠르나 느리나 둘 다 좋아하지만. 일장 일단이 있는 것 같네요. 빠르면 가볍고 경쾌하지만 좀 차가운 느낌이, 느리면 무겁지만 따뜻한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런 점에서 세르게이의 연주는 정말 맘에 듭니다. 무엇보다도 하고 싶은 이야기를 조근 조근 차분하게 전달하듯, 빠르지 않으면서도 기품있고 우아하게, Allemande라는 춤을 눈앞에서 보여주듯이 연주해서 말이죠.

D단조 첫 곡 답게 D현과 G현의 서드 포지션에서 짚게 되는 D를 더블스톱으로 긋고 시작해서 기본적으로 4박자 곡인데 중간 중간에 셋단이음표가 껴들어서 리듬감을 만들어나갑니다. 바흐 무반주를 들어보면, 정말 이게 반주 없이 혼자...? 라는 의문을 가져보실법 합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게, 바흐 무반주, 특히 바이올린은 "polypony가 거의 불가능한 악기로 혼자서 polypony를 만드는" 곡이니까요. 악보는 심플합니다. 더할 나위 없이 심플하죠... 샤콘느라든지, 사라방드에서 등장하는 연주자 잡아먹는 더블 스톱이나 트리플 스톱, 아르페지오나 스케일도 없어, 길이도 짧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이런 단선율 곡들이 오히려 음악을 만들어나가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고들 합니다. 그리고 음반을 들어보면, 그렇게 들리고요. 저렇게 연주하려면 도대체 어떻게 켜야 하는 거지, 라고- 음반을 듣고 나서 바이올린을 잡을 때 마다 들었던 고민이기도 했지요.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은, 아무리 단선율 곡이라도 그 안의 polypony를 무시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아티큘레이션(articulation) 이 생기고, 윗성부와 아랫성부(베이스/통주저음) 가 생깁니다. 악보에는 아무 표시도 없지만, 연주자들은 지켜야 하는, 바흐와의 약속.



판본마다 다르지만 제가 동그라미 친 것에 아래쪽으로 콩나물 뿌리가 그려진 악보도 있습니다. 음악을 들으면서 악보를 보면 알겠지만, 베이스 음 역할을 하는 저 동그라미 친 음들은 최소한 그 다음 베이스까지는 음을 지속시켜주는게 중요하다는 거죠. (+ : 피아노의 페달을 밟는 것과 유사한 원리입니다.) 바이올린으로, 그 작은 공명판만 존재하는 악기로, 그게 어떻게 가능한 건지- 전 지금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그걸 가능하게 만드는 여러 대가들이 위대해 보일 따름입니다. 처음에 저는 악보를 보고 귀를 의심했죠. 이게 저걸 저렇게 키고 있는 게 맞는건가- 라고. 이게 정말 한 대로 하는 거란 말이야-? 라고.

+) 바흐의 곡은 거의 대부분 반복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의 원래 의도가 어떤 것이었든지간에, 이 반복구는 다양한 용도로 활용되게 되는데, 속도, 다이나믹에 차이를 두거나 장식음을 넣거나 하는 식으로 다양하게 활용하는 연주들을 볼 수 있습니다. 세르게이 연주의 경우에는 강약을 조절해서 이색적인 반복구를 만들어내고 있어요.

이 음반의 연주자인 세르게이 하차투리안은 1985년생, 심히 젋습니다 -_- 러시아식 이름이지만, 아르메니아 사람이고 작곡가 하차투리안과는 아무 상관 없는 사람이래요. (하지만 그래봤자 러시아 -_-) 2000년에 시벨리우스 콩쿨에서 우승했고, 우리나라도 거쳐갔다고 하는데, 전 본 기억이 없고 ㅋㅋㅋ 여튼 젊은 나이인데- (아 도대체 난 뭐하고 산거야 싶은 -_-) 대단합니다. 이 곡을 켜는 것도 그렇고, 그 곡이 나이에 걸맞지 않게 성숙하다는 것도 그렇고. 무엇보다도 음반 자켓을 저렇게 찍어놨겠다 이말입니 (... 퍽!)

간만에 산책하면서 이 곡을 듣는데, 발이 땅을 딛는지 허공을 딛는지 모르겠더라고요. 완급 조절도 꽤 능숙하고 훌륭합니다. 전 이 사람 나이 보기 전까지 지긋하게 나이 좀 먹은 사람이 연주하는 줄 알았어요. 어쩐지 빠른 곡은 정말 엄청 빨리, 파워풀하게 긋는 것 같더라니 ㅎㅎㅎ

아... 오만 잡다한 소리가 길었네요 ㅠ_ㅠ 이만 접고, 곡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


Bach, Partita for Solo Violin No.2 in D minor BWV 1004
1. Allemande
Sergey Khachatryan, violin

Posted by 리히테르

Yosemite
Death Valley
Montrey & Carmel
UC Berckley
Stanford University
Escondido Elementary School
Palo Alto

Pier 39
China Town
Lake Tahoe
Nafa Valley...

Michael Tilson Thomas
49ers



...

무려, 17년만에 다시 찾는 곳.


Bach, Italian Concerto in F major, BWV 971
Tatiana Nikolayeva, piano
3. Presto
1. Allegro


그 때, 갓 사춘기가 막 시작될 무렵의 나에게는
난생 처음으로 보는 외국의 신기한 풍경들이었기 때문에,
캘리포니아 주 전체가 그저 어린 시절의 추억이라 하기에는 너무나도 깊게 각인되어 있었다.

처음 보는 신기한 동물들,
나무 하나 없이 망망한 도로만 펼쳐진 너머의 지평선,
시리도록 투명했던 바다와 하늘, 눈부신 햇살 아래의 포도밭...

다시 가본다는 것 한 가지만으로 두근 두근, 그저 설레임만 가득하다.
눈물 날 정도로 그립다.

맛있는 걸 먹고, 좋은 물건을 쇼핑하는 것 보다도
나는 내가 어렸을 때 살았던 동네와 학교를 다시 가 보고 싶다...



내일 출국합니다. 다녀올게요!

Posted by 리히테르


Bach, Cantata BWV 208 Hunt Cantata, "Was mir behagt, ist nur die muntre Jagd!" 중 
"Schafe konnen sicher weiden" (Sheep may safely graze ; 양들은 평화롭게 풀을 뜯고)
; transcripted by Egon Petri

세속 칸타타 중, 사냥 칸타타라고 불리지만
바흐의 생일날에 연주되었다고 해서, 생일 칸타타로 널리 알려진 이 칸타타의 유명하고도 익숙한 아리아.

피아노곡으로 편곡된 것을, 손열음이 작년에 반 클라이번 콩쿨 결선에서 쳤다고 한다.

창경이네 블로그 갔다가 이거 올라온 거 보고 이게 대체 누구의 무슨 곡이더라 하면서 열심히 찾다가 결국 찾았다.
문 선생님 말씀처럼, 관심을 가지고 찾으면 다 찾아진다. -_-)b

손열음 참 많이 컸네...

예전에 프로코피예프 소나타 7번과 베토벤의 열정 소나타 전악장을 같은 리사이틀에서 연주하질 않나...
해외에서 배운 경험이라곤 전무한 아이가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을 협연하질 않나...
하는 연주마다 피아노가 부셔질까, 대체 뭘 먹었길래 저렇게 힘이 좋을까, 입을 딱 벌리게 만들던,
그런 겁대가리 없던 꼬마 아가씨가... 
국제 콩쿨도 나가고, 바흐도 저렇게 예쁘게 칠 줄 아네...
저 인상 쓰는 거 하며, 야무지기도 하고 개구쟁이 같기도 한 면모는 아직 그대로인데...

휴. 언제 한 번 보러가야겠다.
Posted by 리히테르


Simon Standage, violin
The English Concert, Trevor Pinnock


...

피아노 협주곡이 원곡인지, 바이올린 협주곡이 원곡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피아노 협주곡 중에서도 D 장조로 된 똑같은 곡이 있다.
바흐의 작품 중 피아노 곡과 바이올린 곡의 비중을 생각해 볼 때
피아노 협주곡이 원곡일 가능성이 조금 더 높긴 하지만...
글쎄. 이 곡은 아무래도 건반을 뚱땅거리는 소리보다는
활로 나긋 나긋하게 긋는 소리가 더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생각해보니,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지만
개인적인 취향으로 말할 것 같으면, 난 영국 연주자들을 참 좋아라 한다.
트레버 피녹을 비롯해, 매튜 홀스, 모니카 허젯에서 재클린 뒤 프레까지...
그냥 좋아하는 사람들 꼽아 보니 영국인이었던 걸까.

안개와 황야...
BBC 방송에서 보여준 제인 에어 미니시리즈에서 나왔던 그 풍경들이 어찌 그리 매력적이던지.

죽기 전에 한 번 가 보고 싶은 곳이다.






Posted by 리히테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