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5.10.16 영국 공연장 가 본 곳 정리
  2. 2015.10.16 위그모어 홀 백스테이지 사담

1. 로얄 알버트 홀
2. 로얄 오페라 하우스
3. 카도간 홀
4. 사우스 뱅크 센터 로얄 페스티벌 홀 
(퀸 엘리자베스 홀은 아직 안 가봄)
5. 위그모어 홀
6. 바비칸 센터 극장 
(콘서트 홀은 아직 안 가봄)
7. 킹스 플레이스
8. 윈드햄 극장
9. 노엘 코워드 극장
10. 길구드 극장
11. 올드빅 극장
12. 햄스테드 극장
13. 국립극장 - 올리비에, 리텔튼
14. 트라팔가 스튜디오
15. 햄스테드 극장


음. 


돈마 웨어하우스, 영빅, 개릭, 알메이다 극장 정도가 유명한 데 아직 못 가본 곳이고

LSO 세인트 루크를 비롯해서 세인트 존 스미스 스퀘어 같은 교회 공연장이나 

로얄 아카데미 오브 뮤직의 듀크 홀 같은데만 가보면 되는 건가;; 

클래식 쪽은 진짜 어지간한 곳은 다 가봤구나.


Posted by 리히테르

위그모어 홀  백스테이지는 "사랑은 열린 문..." 까지는 아니고 여튼 스테이지 도어 레이드 (raid 맞다. 사전적 의미 그대로 습격, 급습이다. 예약의 나라 영국에서, 아무런 사전 고지나 약속 없이 들어가는 것이므로.) 를 해본 곳 중 가장 경계가 허술한 곳 중의 하나이다. 매 공연 마다 백스테이지에 쳐들어 갔는데, 단 한 번도 제제를 받은 적이 없다. 들어가보라고 등떠밀어주는 사람은 봤어도. 사실, 관객의 연령대나 성향들을 생각하면, 굳이 빡센 보안 (...)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니까, 연극을 하는 웨스트엔드의 극장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미친놈의 퍼센티지가 적고, 확률적으로 범죄에 준하는 사건이 일어날 가능성이 적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한다.


위그모어 홀의 백스테이지는 무대를 보고 섰을 때 오른쪽으로 나가는 문으로 나가면 위치한다. (아래 사진에서 하얀색 화살표) 위그모어 홀의 무대는 아름다운 돔 천장의 벽화로 유명한데, 무대 위의 연주자 출입구가 아닌, 관객들을 위한 건물 뒤쪽의 출구로 연결되는 비상구가 무대 양쪽에 하나씩 있다. 실제로 공연이 끝나면 앞쪽에 앉은 관객들은 그 쪽으로 나간다. 이 두 비상구 중 오른쪽의 비상구로 나가면, 좁은 통로가 나오는데, 문 열고 바로 왼쪽에 위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다. 이 계단으로 한 층을 올라가면, 바로 연주자 대기실이다. 층계 중간에는 녹음시설을 위한 골방이 하나 있는 것도 볼 수 있다.





연주가 끝나면, 연주자의 유명세에 따라서 제법 적지 않은, 그렇지만 그리 많지도 않은 사람들이 연주자 대기실을 드나든다. 건물 자체가 4~5층정도 되는 건물이기 때문에, 그 위층으로 올라가 본 적은 없지만, 개인실은 위층에 있다고 알고 있다. 위그모어 홀 2층 (level 1)에 있는 백스테이지는 사실 연주자 대기실이라기보다는 리셉션 홀 같은 역할을 한다. 벽면에는 역대 연주자들의 흑백사진이 빼곡하게 사방의 벽을 채우고 있고, 가운데에는 와인이나 스파클링 워터 등이 놓인 원형 테이블이 있다. 보면대며, 악기를 놓을 수 있는 작은 탁자 같은 것이 벽면에 드문 드문 붙어있다.





연주가 끝나면, 위그모어 홀의 운영자 (라고 쓰고 성공한 덕후라고 읽는다) 인 Gilhooly 씨를 비롯한 음악계 명사들이나 연주자 관계자들이 이 공간에 모인다. 대부분의 경우에 동양인은 나 하나였고, 종종 중국인이나 일본인 관객이 싸인받으러 함께 들어오는 경우도 보았다. 이런 식으로 난입 (?) 하는 극성팬이라고 해 봤자, 아무리 많아야 서너명, 아니면 대부분 한두명이니, 연주자들도 딱히 불편해하거나 팬들의 출입을 막지 않았다. 시큐리티를 담당하는 직원도, 눈치가 빤히 보이는데도 들어가라고 하지, 내쫓지 않는다. 사인 이벤트 겸 연주자에게 질문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미팅이 따로 없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분명히 따로 있다. 나는 위그모어 홀 프렌즈 멤버쉽 소지자에게만 오픈되는 행사 중, 보스트리지와 BBC 라디오 진행자가 함께 출연하는, 보스트리지의 근간 Winter Journey 에 대한 대담과 싸인회에 런던에 있는 동안 유료 (5파운드)로 참석해 보았는데, 진짜 내가 제일 어리고 나 혼자 유색인종 (!) 이어서 정말로 꽤 당황했다. 아무리 봐도 백인에, 노인네들밖에 없을 때의 쪼그라드는 마음이란. 아무리 멤버쉽 간지가 좋고, 쏟아부은 돈 이럴 때 써먹어야지, 라고 하지만 역시 이런 분위기에서 위축되는 건 위축되는 거다.


벨치아 퀄텟의 연주가 끝나고 나서 쭈빗거리며 입구 층계에서 머뭇머뭇 거리고 있을 때, 자기와 꼭 닮은 두살박이 자기 아들을 팔에 안고 왔다 갔다 하던 첼로 주자였던 Antoine Lederlin 씨가 환하게 웃으면서 들어가서 같이 얘기하자며 등을 떠밀었다. 나는 이런 환대가 몹시도 낯설고 부끄럽고 얼떨떨했다. 어어... 나 이래도 되는겨? 진짜? 그럼에도 영어가 딸리고 (진짜 영어를 유창하게, 자연스럽게 잘하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에 휘말렸다. 이런 일은 정말 굉장한 동기부여의 계기가 된다.) 얼굴에 깔린 철판의 두께도 그렇게 두껍지가 않은지라, 결국은 어버버... 하다가 나왔다. 이 때 나는 그 자리에 있던 이모겐 쿠퍼(!)와 인사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이 때 대화가 압권이었다. 

"우리 어디서 봤던가요?"

"아.. 한국에 오셨을 때 연주 봤어요"

"아. 기억 나요. 대기실로 왔죠?"

"네... 감사합니다"

"런던 살아?"

"...아뇨, 여행왔어요"

"연주 재밌었어?"

"...(끄덕끄덕 : 나중에 이게 예의가 아니었음을 깨닫고 이불킥. 어이구 바보 멍청이 똥개 말미잘)"

"입고 있는 자켓 참 예쁘구나, 재밌게 지내다 가"


... 영국인들이여...


상드린 피우의 공연이 끝나고 나서는 그래도 선물이라도 전해줄 구실이 있어서 덜 어색했다. 맨손으로 가는 것 보다는,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줄 게 있는 게, 나같이 소심하고, 영어 잘 못하는, 반 쯤은 관광객 티가 어쩔 수 없이 나는 사람으로서는, 맨입으로 팬이에요, 연주 좋았어요, 싸인해주세요, 하는 것 보다 선물이라도 하나 얹어주는 게 좀 덜 구차해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던 탓이다.


보스트리지, 이셜리스, 드레이크의 공연 때는 킹스 컬리지에서 석사를 하는, 나보다 한 여섯살 정도 연하인 랜선-여자사람-지인을 만났다. 인터미션 때는 아이스크림을 나눠 먹었고, 끝나고 나서는 함께 버스를 타고 레스터 스퀘어까지 왔는데, 이 친구에게 내가 보스트리지를 영업한 책임이 있었기 때문이다. 학생이기 때문에 제법 싼 값에 공연을 보러온 그 친구는 나에게 손목이 잡혀 위그모어 홀 백스테이지를 구경하는 신세가 되었다. 아무 제지없이 나를 따라서 위그모어 홀 백스테이지에 들어간 그 친구는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우와! 짱이다! 역시 덕후의 나라는 다르군요!"


푸하하하하하하하하하.

나는 그 친구와 보스트리지의 투샷을 찍어주었다. 나보다 영어의 유창함이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사람과 같이 있으니, 정말로 든든했다.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 따로 없었다. 나는 이셜리스에게 싸인받으려고 주춤주춤 다가가다가, 좁은 공간에 빽빽히 들어찬 사람을 헤치고 드레이크에게 다가가던 보스트리지랑 부딪힐 뻔했다. 하긴, 내가 아무리 커 봤자 보스트리지 가슴께밖에 안 오는 난쟁이 똥자루였으니 아마 나 역시 옆에서 마르고 큰 인간이 다가오는 걸 보지 못한 것 처럼 보스트리지 역시 통통하고 작은 인간이 다가오는 걸 보지 못했던 것 같다. 보스트리지는 양손을 흔들며 웁스! 쏘리! 를 외치고 나를 스쳐지나갔다. 그 친구는 내 뒤에 서있다가 보스트리지와 부딪힐 뻔한 걸 빤히 보고도 한다는 말이


"음... 쌤 밀어버릴까 잡을까 고민했는데, 밀어버릴 걸 그랬나. 그럼 보스트리지한테 안겼을텐데"


.... 미안하다... 내가 잘못했다. 드레이크는 1주일도 안 되어서 또 보는 거라서 진짜 아주 배를 쥐고 웃었다. 주변에 제자들로 생각되는 젊은이들이 빙 둘러싸고 있었는데, 나를 지목하며 야! 내가 지난주에 한국에 있었는데 한국에서 날 본 사람이 또 왔어! 이러면서 몹시도 유쾌하게 웃었다. 드레이크의 아내되는 분은 금발에 눈에 확 들어오는 빨간 드레스와 스카프를 입고 있었는데, 나에게 몹시 귀여운 엽서를 받았다, 고맙다, 라고 했다는 걸 나중에 함께 간 친구에게 들었다. 앞에서는 드레이크가, 뒤에서는 드레이크의 아내가 정신없이 떠드는 통에, 안 그래도 웅성웅성 시끌벅적한 홀에서 말을 알아드는 건 무리수였다. 조용한 성격인 드레이크와 달리 아내되는 분은 굉장히 쾌활해 보였다. 잘 어울리는 부부였다. 보스트리지의 유머러스함은 정말 돋보였는데, 뭔 말인지 잘 몰라도 얼굴표정이나 사람을 대한 태도에서 드러나는 은근한 장난기가 굉장히 귀여웠다. 아주 둘이서 엄마 미소를 지으면서 광대가 내려갈 줄을 몰랐다.


사실 난 아직도 잘 모르겠다. 백스테이지에 저렇게 맘대로 들어가도 되는지. 너무 극성인 게 아닐까, 진상짓을 하는 게 아닐까. 그래도, 역시 그렇게 잘못된 일은 아닌 것 같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리고 다녀온 다음에 생각해보면, 역시 들어가보기 잘한 것 같다.

Posted by 리히테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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